2016년 8월 4일 목요일
[칼럼]‘진정한’ 애국보수 안 합니다
[윾사이트] 김윾머 기자 = 아는 남자 후배가 단톡방에 일베 링크를 올렸다는 이유로 동기들에게 따돌림을 당한다는 말을 들었다. 또 다른 후배는 같은 방을 쓰는 기숙사 형들에게서 "일베는 자기들이 애국보수라서 욕 먹는줄 안다면서? 병신이라서 욕먹는건데" 라는 험담을 들었다고 한다. 후배는 자기 책상에 박근혜 자서전이 있는데, 형들이 그걸 알고 그러는 건지 걱정이 된다고 했다. 애국보수나 일베를 하나의 덩어리로 보는 것부터 이슬람국가(IS)나 나치보다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그들의 반응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 이후로도 비슷한 사례를 계속 접했다. 며칠 전에는 친구가 남동생에게 “일베는 진정한 애국보수가 아니니, 형은 보수에 대해 공부 좀 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어떤 지인은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교수님으로부터 일베를 멀리하라는 말을 들었다며 고민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여러 사건과 사람들의 반응에 화가 나서 카톡 프로필을 "자연속에 내가 있다 운지!"로 바꿨다. 이게 그렇게나 불편하다면 차라리 나를 먼저 멀리해달라는 심정이었다. 프로필을 바꾸고 얼마 안 돼서 오래된 여자친구 A에게 카톡이 왔다. 일베 폭식투쟁에 관해 물어볼 것이 있다고. 그 친구는 "일베의 폭력성이 염려스럽다. 보수주의를 공부하니까 너도 불편한 게 있을 것 아니냐"고 물었다. 나는 "일베가 뭘 했는데?"라고 물었고, 친구는 딱 봐도 나무위키를 습득하고 띄엄띄엄 편집한 사건들을 나열하며 이런 폭력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자기도 잘 몰라서 몇 가지 자료를 보고 생각한 것들이며, 그래서 양쪽의 이야기를 들어야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 같아서 나에게도 묻는다고 덧붙였다. 나는 친구에게 “나도 어느 부분에서 반성은 필요하다고 느끼지만 이 정도까지 염려하고 공격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 나는 네가 사안에 대한 단편적 해석이 아니라 조금 더 시간 내서 깊이 공부하고 알아 가면 좋겠어. 안 그러면 그 사안에 대한 판단도 결국 기울어진 정보와 관념을 기반으로 결정 내릴 수밖에 없으니까”라고 말하고 책 몇 권과 좋은 칼럼을 소개해줬다. 다행히 친구는 자신이 조금 더 공부하고 알아가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생각해보니 친구는 아마 내가 발화하는 방식이 진보를 대놓고 비난하는 게 아니라서(?) 내가 일베와는 다른 보수주의를 지향한다고 생각하고, 이 사태를 어떻게 보는지 묻고 싶었던 것 같다. 비슷하게 최근에 올린 내 글을 공유한 몇몇 사람들이 "이런 게 진정한 애국보수"라는 식의 코멘트를 단 것을 목격했다. 내가 올리는 글에 ‘굳이’ 폭력적인 발화를 하지 않을 뿐이지, 솔직히 현실 세계에서 나는 그들이 경악하는 발언보다 훨씬 더한 생각을 하고, 말을 한다. 29년의 세상살이를 통해서 대다수 진보 정치인에게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게 된 좌빨 비관론자이며, 종북 없는 미래와 동시에 남성 공동체를 꿈꾸며 살아가는 예비 어버이연합이다. 내 페이지에도 좌빨들, 특히 세월호 고의침몰설 믿고 다니는 병신들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폐쇄적인 사람이다. 짧은 인생, ‘화합’은 사상이 같은 사람(혹은 자아 성찰이 가능하고 부끄러움을 알고 종북성향이 없는 극소수의 진보)과 함께 하고 싶고, 배울 자세나 성찰할 의지가 없는 누군가를 굳이 설득하고 알려줘서 함께 가고 싶은 마음은 없다. 지금 나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하루하루가 벅차니까. 이렇게 생각하는 나는 ‘진정한 애국보수’가 아닌가?
진정한 애국보수? 애국보수는 단 하나 혹은 일베와 일베 아닌 것 정도로만 나뉜 게 아니다. 한 사람의 정체성도 애국보수 혹은 일베 하나로만 형성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쉽게 "너는 진정한 애국보수로구나."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각자의 삶을 자유롭게 하는 개개인의 정치성향 있으며, 정치적 사안에 따라 협력하거나 투쟁하며 그 속에서 끊임없이 자정하고, 의지에 따라 누군가와 화합하거나 갈등을 일으키며 살아갈 수 있을 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애국보수가 세상의 구원자요 천사요 모든 것을 아우르는 존재는 아니니까.
나는 누군가가 허락하는 ‘진정한 애국보수’가 될 생각이 없다. 이것은 나도 모르게 가하는 폭력을 성찰하지 않겠다는 것과는 다른 의미의 거부이다. 나는 내 존재 자체로 자유로워지고 싶고, 소중한 사람들이 함께 자유롭길 바랄 뿐이다. 혹, 진정한 애국보수가 있다고 믿는다면 스스로가 진정한 애국보수의 모델이 되어주길 바란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310&aid=0000052636
※ 이 칼럼은 여성신문에 실린 ['진정한' 페미니스트 안 할래요] 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페미니즘을 애국보수로, 메갈리아를 일베로만 바꾼 글입니다. 이렇게만 바꿔도 문장이 성립이 되네요. 역시 일베나 메갈이나.. (라고 하면 누가 더 기분 나빠할까)